집 사고 팔면서 그걸 안 했다고요?

동산 거래에서 믿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여기서 믿음은 종교나 존재적인 믿음이 아니라 인간과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다. 

손님들을 처음 만날땐 거의 예외없이 어느정도 긴장하고 경직되어 있으시다. 싸울 준비하고 방어자세로 나오시는 분들도 가끔 계신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얘기하다 보면 서서히 긴장감이 풀리면서 편하게들 웃기 시작하신다.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생기는 속도와 깊이는 사람들마다 차이가 많다.

믿음의 “속도”는 얼마전에 어떤 분이 기록을 세우셨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은 한번 보고 긴장들을 푸시는 편인데, 그 분은 이 웹사이트만 보고 긴장을 푸셨다. 자슈와씨 믿는다. 하란데로 할테니 알려만 달라… 고 하면서 1백만불 정도 되는 돈의 부동산 투자 전략을 나에게 의뢰하셨다. 어우… 엄청남 부담감! 그래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고 이럴때 살맛이 난다. 

믿음의 “깊이”는 ‘저 사람이 적어도 나를 해치지는 않겠구나’라는 수동적인 믿음에서 ‘이 사람이 나를 보호해 주겠구나’라는 능동적인 믿음까지 발전할수 있을 것이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러한 능동적인 믿음까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많은 손님들이 빨리 믿어주시고 깊게 믿어주시는 편인데,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20년 가까이 부동산 하면서 수백분들의 손님을 만났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7-8분 정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은 손님들이다.  1시간이면 충분한 얘기를 이 분들하고는 3시간씩 해야 한다.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이분들하고는 얘기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는게 문제다. 내가 뭘 잘못했나… 자꾸 내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손님들이다. 같은 얘기라도 꼭 기분나쁘게 하는 능력이 있으신 분들이다.

이런 경우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 경우는 빨리 모든 과정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밖에 안 생긴다. 나는 진심으로 잘하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안 믿지? 궁금하고 원망스럽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별로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믿음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살짝 바꾸면 내 부동산 생활의 간증이다. 믿어주면 천국이고 안 믿어주면 지옥같다. (문맥상 힘들다는 쪽으로 글이 쓰여지고 있는데, 나도 이럴땐 보호 본능이 작용한다. 손님이 지나치게 선을 넘으면 나도 마음문 닫고 사무적으로 대한다. 그래서 힘들지 않다. 그래도 내가 베테랑인데, 후배 에이전트들한테 쿨하게 보여야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지낸다. 그런데 솔직히 그럴땐 조금 힘들긴 하다.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다.)

끝까지 믿지 않는 손님들을 앞으로도 자주는 아니지만 만나게 될 거라는 것을 잘 안다. 그 분들에게도 더 잘하고, 나의 마음도 다스리기 위해 평소에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모아 보려고 한다. 

1. 믿어주는게 신기한거고 고마운거지 안 믿는게 이상한게 아니다. 사실 안 믿고 경계하는게 맞다.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데… 더더군다나 큰 돈이 오고가는 부동산에서… .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게 아니니, 누군가가 나를 믿어줄 거란 기대감과 익숨함을 새로운 손님들을 만날때마다 매번 버리고 비즈니스에 임하는 것이 맞다. 

2. 누구를 쉽게 믿고 안 믿고의 성향은 분명히 유전적인 요인과 성장 기간중 환경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타고난 또는 이미 굳어진 성격과 성향을 누구든 쉽게 바꾸지 못한다. 아니 인식조차 못하기 쉬울 것이다. 특별히 생각난다는 그 손님들 대부분 악의는 없었다. 나를 “안” 믿는게 아니라 “못” 믿는거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데, “못” 믿는 사람들을 기분나빠할게 아니라 오히려 따뜻하게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너무 심하게 하시는 분들은 솔직히 자신은 없다.)

3. 손님이 나를 믿고 안 믿고가 아니라 집을 잘 사고 판다는 목표에 항상 촛점이 맞춰져 있어야 한다. 당연한 얘기인데 이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를 믿고 안 믿고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긴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손님과의 소통이다. 충분한 대화와 자료 검토를 통해서 손님과 나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거의 대부분 최상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목표에만 집중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해야 하고 기분이 나쁘더라도 나를 안 믿어서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이어야 할 것이다.

4. 나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인 경우도 분명히 있다. 인터넷에 이상한 정보들도 많이 떠돌아다닌다.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많은 새로운 정보들을 소화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되시는 분들도 계시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분들은 사고방식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위하는 마음으로 진실을 말한다 해도 그것이 액면 그대로 전달되기에는 방해물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한다. 

5. 부동산 거래는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삶의 이벤트중의 하나다. 이혼 바로 다음이라나… 나를 끝까지 못 믿는 분들은 스테레스에 약하신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 스트레스때문에 말도 안 들리고 사람도 안 보이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못 믿는 분들한테 스트레스가 가장 높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럴수 밖에 없다. 나를 못 믿는 분들은 스트레스 수위가 너무 높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기분 나쁘게 대한다고 기분나빠하는게 아니라, 그분들의 스트레스 레블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기 위해 궁리하고 노력한다면 많은 경우에 서로에게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 

6. 손님들에게 잘하려는 내 “진심”은 나의 말과 행동, 표정등 외부적인 표현들을 통해 손님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정말 부족한게 많다. 말도 잘 못할때가 분명이 있고, 내 행동이나 표정들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때가 왜 없을까. 그러고보니 그렇게 부족한 것 투성일수밖에 없는데도 불완전한 외면을 통해 내 진심을 알아주고 나를 좋아해 주는 많은 손님들이 너무나 고맙다. 손님들이 나를 못 믿고 끝까지 경계하면 내가 나도 모르게 원인을 제공했을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